[데스크 칼럼] 전쟁과 인플레, 뒤바뀐 세계

입력 2022-04-28 17:30   수정 2022-04-29 00:06

“매일 밤 11시 윙~ 소리와 함께 전투기들이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5분 후 어디선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건 제비뽑기, 아니 러시안룰렛이다. 오늘 넌 타깃이 되지 않았어. 내일까지 꼭 살아남아.”

우크라이나 그림책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는 이달 출간한 《전쟁일기》에서 21세기에 진행 중인 전쟁의 공포를 묘사한다. 2월 24일 새벽 5시30분, 러시아의 폭격에 평화로운 한 가족의 세상은 완전히 뒤집혔다. 엄마는 두 아이의 팔에 이름과 생년월일, 연락처부터 적었다. 혹시 죽더라도 누군지 알아볼 수 있게. 한국 거리 곳곳에도 내걸려 있는 ‘일상이 무너진 우크라이나’는 그렇게 책 속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푸틴플레이션' 파장 클 듯
전쟁의 공포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초연결 시대다. 먼 나라의 전쟁은 이미 우리 일상을 흔들고 있다. 동네 빵집의 500원짜리 단팥빵이 사라졌고, 계란 한 판 가격은 7000원을 넘어섰다. 식료품에서 기름값까지 물가는 전방위로 치솟고 있다. ‘푸틴플레이션’ 효과다. 전쟁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유동성 잔치를 채 끝내기 전 찾아온 팬데믹에 고개를 들기 시작한 인플레이션을 자극했다. 5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올 것이라고 세계은행은 경고했다.

전쟁은 바이러스처럼 가장 약한 영역을 파고든다. 여자, 어린이 등 약자에게 더 고통스럽다. 인플레이션도 마찬가지다. 식료품 가격이 치솟으면 저소득층은 생존의 위기로 내몰린다. 푸틴플레이션은 약소국부터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한 곳인 스리랑카가 최근 국가 부도를 선언했다. 식료품 가격 급등에 따른 민심 이반과 정치적 불안은 터키, 파키스탄, 아르헨티나 등으로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다.

전쟁도, 그로 인한 세계의 고통도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다. 폭력은 폭력을, 증오는 증오를 낳는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종전은 멀어진다. 부차에서 벌어진 끔찍한 학살은 기폭제가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더 이상 러시아 영토 확장의 문제가 아니다. 러시아는 최근 3차 대전, 핵위협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약해지는 것이 목표”라고 선언했다.
세계화 등 변곡점 맞아
푸틴이 전쟁에서 이기든 철수하든 러시아는 역사적 심판의 순간을 맞게 될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분석했다. 푸틴은 이미 전범으로 지목됐고,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처지다. 콜럼버스의 항해로 시작된 스페인 제국주의가 1898년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며 막을 내렸듯 푸틴과 러시아도 비슷한 운명을 겪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변곡점에 서 있는 건 러시아뿐만이 아니다. 미국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최근 흥미로운 보고서를 냈다. ‘더 빅 체인지’란 주제로 2010년대와 2020년대 펼쳐질 세계를 비교했다. 2010년대의 키워드가 ‘평화’라면 2020년대는 ‘전쟁’이다. 2010년대를 지배했던 디플레이션, 양적완화(QE), 민주주의, 세계화란 키워드는 인플레이션, 양적긴축(QT), 독재정권, 민족주의로 치환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세계의 지축이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다.

눈여겨봐야 할 키워드는 세계화와 민족주의다.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타결 후 30년간 지속됐던 세계화는 막을 내리는 분위기다. 팬데믹 이후 공급망 문제를 겪은 세계 각국은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탈 행렬을 자극하는 촉매제가 됐다. 변화의 시기에 더해진 전쟁의 파장은 생각보다 훨씬 클 것이다. 한국도 그 영향권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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